그림책 속의 바나나
배 용 길
진이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진이는 지금 다섯 살입니다. 곁에 함께 누워 있던 엄마가 안 보입니다. 진이의 입에서 곧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습니다. 진이는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왔습니다. 따뜻한 햇살에 눈이 부십니다. 손으로 눈을 가립니다. 진이는 마당으로 내려왔습니다. 햇살이 제법 따갑습니다. 진이는 나무그늘로 걸어갔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 꼬물꼬물 기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개미들이었습니다. 진이가 개미를 잡으려고 따라가 보지만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진이는 우뚝 섰습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혔습니다. 진이는 마루로 되돌아 와서 걸터 앉았습니다. ‘후우’ 한숨 쉬고는 다시 마당으로 내려와서 대문을 향해 걸어 갔습니다. 엄마는 어디 가셨는지 아직 돌아오지 않습니다. 진이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길가에 있는 슈퍼에서 두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진이는 먹고 싶어 쳐다보며 군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듯한 살이 통통하게 찐 아주머니가 아이스크림을 몇 개 더 들고 슈퍼에서 나왔습니다. 두 아이가 달려가 아주머니가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받아 쥐었습니다. 손을 잡고 마을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진이는 부러운 눈빛으로 이들을 바라보다가 뒤를 따라갔습니다. 마을 어귀에 있는 병원 앞까지 가까스로 걸어갔습니다. 이제 다리가 아픕니다. 더 걷기가 힘이 듭니다. 진이는 길 옆의 돌 위에 궁둥이를 갖다대고 앉았습니다. 앞서 가던 아주머니와 아이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진이는 허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엉엉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이 때 옆집의 민이 엄마가 지나가다가 울고있는 진이를 보았습니다. “진아, 왜 여기서 울고 있니?” “엄마가 없어요. 엉엉.” “자, 가자. 곧 엄마가 오실 거야.” 민이 엄마는 진이의 손을 잡고 갔습니다. 진이는 민이 엄마가 주는 새우깡 과자를 먹다가 이윽고 마루에서 사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그새 집에 돌아온 엄마는 재워둔 진이가 보이지 않아 무척 걱정이 되었습니다. 집 안팎을 다 둘러보아도 진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걱정이 되어 마을 길로 걸어다녔습니다. 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나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 보았지만 별 신통한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속이 탔습니다. 땀을 씻으며 골목길로 들어서는데 잘 아는 민이가 뛰어왔습니다. “진이 어머니, 진이가 저기 병원 앞에서 울고 있기에 우리 엄마가 우리 집에 데려다 놨어요.”하며 앞장서서 걸어갔습니다.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민이네 집 대문을 들어서자 마루에 앉아있던 진이는 엄마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녀석, 엄마를 보니 무척 반가운 모양이구나. 진이 어머니, 진이가 저 병원 앞에서 혼자 울고 서 있기에 내가 데리고 왔어요.” “민이 어머니, 고맙습니다. 여기, 민이한테 그 이야길 다 들었어요. 거듭 고맙습니다.” “그걸 가지고 뭘 고맙다고 하셔요.” “정말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예, 안녕히 가십시오.” 엄마 등에 업힌 진이는 싱글벙글 하며 좋아 했습니다. 저녁 때가 되어 회사에 나가시는 아빠가 퇴근을 하였습니다. 아빠는 진이에게 보여 줄려고 그림책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진이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그림책을 봅니다.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봅니다. 다람쥐랑 기린이랑 동물들도 그려져 있고, 바나나랑 복숭아랑 과일들도 그려져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그림책을 넘겨 가던 진이는 먹음직스런 노란 바나나가 그려져 있는 그림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진이는 갑자기 바나나가 먹고 싶었습니다. 이 곳으로 이사 오기 전인 지난 가을에 먹어본 바나나입니다. 그림 속에서 바나나의 그윽한 향내가 풍기는 것 같았습니다. 진이는 군침을 삼켰습니다. “엄마, 바나나 줘!”하고 진이는 갑자기 엄마에게 졸랐습니다. 엄마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곧 그림책 속의 바나나를 따서 엄마도 한 입, 아빠도 한 입 먹는 시늉을 해 보이고 진이에게도 한 입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먹고 싶은 진이의 마음을 달랠 수는 없었습니다. “아빠, 바나나 줘!”하며 진이가 이번엔 아빠에게 졸랐습니다. 아빠인들 그림책 속의 바나나를 딸 방법이 없었습니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진이에게 따 먹이는 시늉만 해 보였을 뿐 진이의 마음을 달랠 수는 없었습니다. 진이는 떼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림책을 내던지고 두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울음보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가 마주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곳에서 바나나를 구하려면 차를 타고 멀리 청과물 시장까지 가야 합니다. 이 어두운 밤에 어떻게 간단 말입니까? 한참 울다 지친 진이는 마침내 잠이 들었습니다. 그림책을 꼭 껴안고 잠이 들었습니다. 자면서 가끔 입을 오물거리는 것을 보면 꿈 속에서 진이는 맛있는 그림책 속의 바나나를 실컷 먹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껍질을 죽죽 벗겨 나온 속 알맹이 바나나를 맛있게 먹는 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
by 비를 사랑하는 소금인형
비 와 연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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