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구조대원의 아픔 >>>
제복을 입은 119 구조대원 두 사람이 찾아왔다.
늑장 출동을 해서 아들이 죽었다며.. 부모가 국가에 몇 억 원을 청구한 소송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빨리 이 직업을 그만둬야지,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구조대원인 박수민 씨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정말 보람 있는 일을 하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몇 달 전..
갑자기 사무실에서 쓰러져 긴급 출동한 119 구조대원들에 의해..
응급실로 실려가 위험을 넘긴 일이 있던 나는..
절박한 상황에서 구원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손을 뻗치는 일이야말로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시무룩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죽어 가는 환자를 태우고 가도 차들이 비켜 주질 않아요.
심지어 ‘왜 시끄럽게 굴어’ 하면서 욕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리고 그는 소송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지난해 8월 말.
새벽 4시 50분 즈음 변두리 한 포장마차에서..
이십대 후반의 회사원들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
근처 풀밭으로 몰려가 싸움이 벌어졌는데..
한 청년이 가슴에 주먹을 맞고는 쓰러졌다.
몰려 있던 사람들은 당황해 뒷걸음만 칠 뿐...
쓰러진 사람을 병원에 데려가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포장마차 주인이 뒤늦게 119 구조대에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근처 소방파출소 소속이던 박수민 대원은..
급한 환자 한 사람을 병원에 데려다 주고 막 돌아와 쉬고 있었다.
피를 흘리면서도 흥분한 나머지 병원엔 가지 않겠다며..
오히려 구조대원을 때리려는 환자였는데...
왜 수시로 분풀이를 당하고 얻어맞아야 하는지 화가 나던 차였다.
그렇지만 환자에게 뭐라고 대들 수는 없잖은가..
게다가 요즘은 환자들의 체중이 늘어나 구조대원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이다.
3, 4층에서..
70, 80킬로그램의 환자를 들것에 싣고 내려올 때면 다리가 휘청거린다.
불 속으로 뛰어들어 부상자를 안고 밧줄에 의지해 새처럼 땅으로 내려오는..
텔레비전 속의 영웅 같은 장면 대신...
현실에서는 비틀거리며 진땀을 흘리다 함께 나가떨어지곤 한다.
그렇게 속상함을 달래고 있으려니 출동벨이 울렸다.
“구급출동! 구급출동!”
출동명령에 그는 번개같이 튀어 나갔다.
지령실에서 전화접수를 받은 시각..
출동 시각..
현장 도착 시각이 정확히 체크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도 도중에 달려나가야 했다.
장소와 상황을 물을 여유도 없이 일단 출발한 뒤 무전기로 파악하는데..
그래야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다.
“풍림서적 네거리.”
무전으로 전해지는 출동 장소였다.
3분 뒤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환자는 보이지 않고 젊은이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빨리 저놈들 잡아요.”
몇 사람이 구조대원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범인을 잡는 것이 구조대원의 임무는 아니었다.
“환자가 어디 있죠?”
박수민 대원이 그들에게 물었다.
“저놈들이 가해자니까 빨리 쫓아가라구요.”
포장마차 주인이 다시 화를 냈다.
“다친 사람부터 말씀하시라니까요.”
그의 재촉에 상대방은 못마땅한 얼굴로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저기 저 잔디밭으로 가 보시오.”
잔디밭으로 달려가니..
이십대 후반쯤 돼 보이는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박수민 대원은 쓰러진 청년의 맥박과 호흡, 그리고 동공의 반응을 살폈다. 반응이 없었다.
심폐소생술을 급히 시행하는데..
친구인 듯한 청년이 옆에서...
“아저씨 살려 내야 해요. 책임져요” 하며 소리쳤다.
박수민 대원은 환자를 구급차에 실었다.
친구가 구급차에 막 함께 타려는 순간..
신고를 받고 뒤늦게 출동한 경찰관이 다가왔다.
“이건 폭행치사 사건입니다. 목격자 진술이 중요하니까 먼저 경찰서로 가시죠.”
경찰관은 구급차에 타려던 친구를 데리고 갔다.
박수민 대원은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 앞에 도착했다.
의사는 환자를 보더니 이미 사망했다고 진단했다.
결국 늑장 출동으로 사람을 죽였으니..
책임을 지라는 것이 소송의 핵심 내용이었다.
동료가 얻어맞아도 자기만 무사하면 나 몰라라 했던 청년들...
현장에서 구조대원이 도움을 요청해도 외면해 버렸던 사람들...
그런 박약한 시민의식을 지닌 사람들은 놔두고..
구조대원의 책임을 탓하는 건 또 하나의 이기주의가 아닐까?
“정말 이 일이 힘들어 그만두고 싶습니까?”
내가 구조대원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금세 얼굴이 밝아졌다.
“꼭 그렇진 않아요. 구급차 안에서 애도 여럿 받았는데.. 백일 때 초대받아 가면 정말 가슴이 뿌듯해요. 그런 때는 힘들어도 좋아요.”
일에서 보람을 느낀다는 건 인생을 즐겁게 산다는 것과 같다.
또 일 자체를 잘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정말 뜻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빛도 없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슈바이처 박사는 대가 없이 일할 때 기쁨은 더 많아진다고 했다.
자신을 온전히 던져 사람을 살리는 일..
그 일을 묵묵히 해내는 그들 앞에...
출처 : 긁적..긁적... ㅡㅡa
'게시판 - 좋은 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장 소중한 것 (0) | 2003.11.24 |
---|---|
500원 동전 속의 행복 (0) | 2003.11.24 |
1006개의 동전 (0) | 2003.11.24 |
어떤 회사 입사시험 (1) | 2003.11.22 |
마음을 다스리는 글 (0) | 2003.11.21 |